작가가 되고 싶었던 과거.


문학동네에서 출판하는 젊은작가상을 읽었다. 그 당시 읽었던 책은 손으로 꼽을 정도지만, 꿈을 포기한 지금까지 읽고 있는 책은 한손으로 셀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젊은작가상이다.


H라고 하자. 오랜만에 간 H의 카페에서 H는 읽고 있던 책을 보여주면서 읽었냐고 물어봤다. 오랫동안 관심이 없던 책 이름이 눈에 보이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H에게 이 책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었던가. 두 손으로 꼽을 수 있는 H와의 대화를 거슬러 올라가며 생각해봐도 내가 H에게 젊은작가상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은 없었다. 우리는 알렌 드 보통을 이야기했고, 내 책장에 있는 H가 추천해준 책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러고보니 H에게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말은 했지. 언젠가 소설을 다 쓰고 나면 보여주겠다고 했는지,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있다고 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자신감을 가득 담고 예술가 행세를 했으니까, 어쩌면 흘려가는 말로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H가 그걸 기억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항상 H의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에 대한 약간의 관심으로 말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H는 2015년 젊은작가상에 대해 말했다.


"대상을 받은 소설 읽어봤어요? 뭐랄까. 상당히 독특해요."


나는 그러냐고. 꼭 읽어보겠다고 말하고 같이 갔던 후배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 후로 H와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후배가 추천한 '질투'와 함께 2015 젊은작가상을 주문했다. 오전에 주문하고 오후에 책을 받아들고, H가 말한 소설의 첫장을 읽었다. 두번째 장을 읽고 책을 닫았다.


확실히 특이했다. 좋은 소설인가? 한국 소설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에는 어렵지만, 첫 두 장만으로도 특이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H는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H의 카페로 갔지만, 일찍 닫은 바람에 듣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두 번째 소설을 읽었고, 다음날에는 세 번째 소설을, 그 다음날에는 네번째와 다섯번째 소설을 읽었다.


그 소설의 이름은 "건축이냐? 혁명이냐?".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 젊은작가상  (0) 2015.12.30
노력  (0) 2015.12.28
취향이 어떻게 되나요?  (0) 2015.12.23
도보 7분  (0) 2015.12.19
새로운 것을 만들기  (0) 2015.12.18
  (1) 2015.12.17

노력하라.


"노력하면 불가능이란 없다."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노력하면 이뤄진다고. 되지 않는다면 네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하나의 노력으로 안된다면, 두 가지 노력을 하고, 두 가지 노력이 안되면 세 가지 노력을. 그렇게 계속 시간을 두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이루지 못할 꿈이 없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무엇인가가 되지 않을 때는 모든 책임이 '노력'하지 않은 내게 있다고 믿었다.


부모님과 나의 나이 차이는 대략 30년. 당신은 항상 아이를 늦게 낳아서 다른 사람들의 자녀들이 자리를 잡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있는데, 당신들의 자녀는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곤 하셨다. 왜 안정적인 직장을 바라지 않는지, 공무원, 교사 등 장기적으로 보고 안정적인 직장을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씀하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나는 부모님의 그런 의향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직업과 진로는 선택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쪽이 내 취향일지도 몰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알려주는 것.


그런 삶도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내게 노력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택을 잘못했으며, 이제는 이해하기 힘든 곳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을 하려고 한다며 걱정 섞인 목소리로 잘 지내냐고 묻는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글쎄... 만약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당신의 생각에 적합하지 않는 일이라면 항상 걱정을 하면서 그 일로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는지, 제대로 지낼 수는 있는지 말하겠죠. 그리고 만약 내가 잠시 흔들리고,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게 된다면 당신 인생의 길이만큼 세상의 진리는 간단하다며, 너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는지 몰라도, 너의 방향은 틀렸다고, 이제라도 올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말할거에요.


그런데 올바른 길이란 게 어디에 있죠?


세상을 살아가는데, 올바른 길이 존재한다면 어느 누구도 고민할 필요는 없겠죠.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이라면 그대로 가면 되고, 틀린 길이라면 방향을 고치면 되니까요. 내가 걷는 길이, 내가 쏟는 노력이 올바르지 않다고 당신의 판단을 믿는다면 내 삶은 그 무게가 매우 가벼워질 뿐이고, 그 가벼움 속에서 부유하는 깃털과도 같이 앞으로는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게 될겁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노력이 부질없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당신은 그랬어요. 돌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러나 처음부터 제대로 간다면 지금과 같은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당신의 삶이 일직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건 오히려 우스운 일이 아닌지, 조금은 고민해보셨으면 좋겠네요.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 젊은작가상  (0) 2015.12.30
노력  (0) 2015.12.28
취향이 어떻게 되나요?  (0) 2015.12.23
도보 7분  (0) 2015.12.19
새로운 것을 만들기  (0) 2015.12.18
  (1) 2015.12.17

취향이 어떻게 되나요?


우선 어떤 것에 대한 취향을 말하는 건지, 다시 물어봐야 하는 질문이다. 취향이라니, 삶의 방식을 말하는 건가요. 취미의 연장에서 삶에서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건가요. 아니면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등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를 말하는 건가요.


"개인 취향". 이 단어에는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고, 쉽게 무엇 하나라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려운 폭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예컨대, "이건 내 개인 취향을 저격했어."라는 말에는 나의 삶에 이러한 유형의 무엇은 친숙하거나 익숙하거나 원하는 것이므로 내가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개개인은 성장 과정에 따라 경험하는 바가 다르고, 그 과정에서 획득하는 생각이나 방식이 다르다. 그러니 "개인 취향"이라는 단어도 각각의 정의로 바라보는 게 맞다.


그러나 실제로 "개인 취향"이라는 게 개개인이 모두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을까? 동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가해지는 자극의 종류와 형태가 동일하며, 그에 따라 반응할 수 있는 선택지도 한정되어 있다. 물론 책을 통해, 영상을 통해, 타인을 통해 각 개인이 형성되니 모든 이들이 100% 동일하다고도, 그렇다고 0%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하지는 못한다.


결국 "개인 취향"이라는 것은 공통된 부분 내에서 개인이 그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품고 있는 조건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 누군가에게 "당신의 취향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대답하는 사람의 조건을 바탕으로 취향에 대해 말하는 것이 좋겠지. 그러나 과연 자신의 취향이 무엇이고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있을지, 누구의 말처럼 범람하는 정보를 기반으로 각자의 생각이나 조건을 판단하려조차 하지 않는 이들에게 어떤 올바른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 젊은작가상  (0) 2015.12.30
노력  (0) 2015.12.28
취향이 어떻게 되나요?  (0) 2015.12.23
도보 7분  (0) 2015.12.19
새로운 것을 만들기  (0) 2015.12.18
  (1) 2015.12.17

+ Recent posts